너 땜에 집 팔아먹겠다~!!
컨텐츠 정보
- 1,693 조회
- 2 댓글
- 목록
본문
2011년 3월, 내가 나이 65살에 히말라야에 간다니까 친구 녀석이 여비에 보태라며 큰돈을 보내왔다. 뭘 이런 걸 다 보내냐, 쫌 더 많이 보내지 않고, 이 말을 하진 않았다. 그나 나나 같은 날 같은 학교 같은 학과에 입학해서 같은 날 졸업하고 같은 회사에 들어갔다가 같은 날 퇴임랬다. 결혼도 두 달 사이로 했다. 사는 게 그게 그거다. 그래도 내가 그 나이에 촬영배낭 짊어지고 히말라야를 간다는 게 기특하고 신통했는지 큰돈을 보내왔다.(그 친구가 히말라야에 간다면 난 절대 그런 돈 보내지 않는다 진짜다) 그리고 그 다음 안나푸르나에 갈 때도 랑탕에 갈 때도 계속 돈을 보내왔다. 그래그래, 나 죽고 나서 조의금 보내는 것 보다 훨씬 낫다 쫌 더 보내라.
랑탕 다녀와서 공항에 도착했을 때 이군이 내 사진을 찍어줬는데 얼어서 그런 거 같진 않은데 코끝이 새카맣게 되었다. 그 사진을 보고 친구 녀석이 말했다.
“너 히말라야에 그만 가라.”
“왜.”
“너 여비 보태주다가 나 집 팔아먹게 생겼다.”
“조금도 걱정하지 마라. 집 없으면 우리 집으로 들어 와. 나 또 나갈 거니까 여비 좀 보내 줘”
친구가 내 몰골을 보니 히말라야에 더 가면 뭔 탈이라도 날 것 같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 후 알프스 트레킹에 갈 땐 미리 말하지 않았다. 인천 공항에 도착해서 출발시간을 얼마 앞두고 알프스에 간다니까 알았다고 하더니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고 공항에 나왔다.
“왜.”
“너 점심이라도 사주려고.”
그런데 출발시간이 다 되어 친구 녀석은 점심도 안 사주고 이군이 가다가 먹으라고 싸 준 내 샌드위치를 뺏어 먹었다. 그리고는 주머니를 부스럭 거리더니 여비 보태 쓰라면서 봉투를 주고 갔다. 열어보니 아예 환전한 500유로다. 내가 가서 용돈으로 쓰려고 준비한 돈보다 많다. 하 짜아식, 기왕 넣으려면 쫌 더 넣지 않고....
지금도 내가 찍은 사진을 보내고 1998년 내가 처음으로 디지털사진전을 할 때는 제주까지 축하해 주러 왔던 녀석이 바로 이 친구다. 아직 나 때문에 집 팔아먹었다는 말 하지도 않고 얼마 전엔 제주에 와서 우리 집 한라산 소주 재고를 줄이고 갔으니 제발 아프지 말고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내년에 내가 어디 멀리 사진 찍으러 떠나면 여비 좀 두둑하게 또 보내주고.
인천공항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