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무속의 산 능선들 이야기(이 한장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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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 오대산 소금강으로 산길을 올랐다.
지금은 없어진, 깐깐하기로 소문난 산장지기 성량수씨가 지키던 노인산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진고개로 하산하던 그 마루금에서 본 풍경은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도 선명하다.
하얀 연무 속에서 둥글둥글 솟아오르던 산맥들.
마치 꿈속처럼 경계가 흐릿한데도, 이상하게 또렷했던 그 모습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땐 카메라가 뭔지도 모르고 산을 좋아만했던 학생 시절이었고
전날부터 줄기차게 내리던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소금강을 오르던 길,
80리터 배낭의 어깨끈은 점점 무거워져 살을 파고들 듯 눌러왔다.
그래도 노인산장까지의 거리가 조금씩 줄어들 때마다,
나는 안도와 절박함을 번갈아 삼키며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어둑해지기전 비로소 산장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산장안의 산객은 몇 없었고
예상대로 성량수씨는 젖은 나를 힐끗 보지도 않았다.
강원도 특유의 퉁명스러움 속에서 말없이 내려준 커피 한 잔.
그게 전부였다.
그날 밤과 다음 날까지, 그는 거의 단답형으로만 말을 건넸지만
이상하게도 그 침묵이 싫지는 않았다.
밤새 비는 그쳤고,
하산길로 잡았던 진고개로 이어지는 산마루금 위에서
나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연무 속에서 작은 산들이 조용히 솟아 있는 풍경 앞에서
시간도, 생각도 잠시 멈춘 채로.
진고개 고갯길에서 겨우 얻어 탄 차를 타고 병내리로 내려와
버스에 몸을 싣자마자 깊이 잠들었다.
그래서일까.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얀 연무 속에 잠긴 산 능선을 보기만 하면
나는 아직도 잠시 정신을 놓는다.
그날의 공기와 침묵과 풍경이,
아직 내 안 어딘가에서 계속 피어오르고 있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