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탕 히말라야-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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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일차-5월 3일/밤부-툴로샤브루-촐랑파티
Bamboo-Thulo Syabru-Cholangpati
고도 1,884미터를 오르는 날
랑탕콜라의 청량한 물소리 새소리, 이른 아침 이런 소리를 듣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지난밤엔 침낭 속에 들어가지 않고 침낭을 펼쳐서 덮고 잤는데도
춥지 않았다.
아침 식사 때 엊저녁처럼 상추가 나왔다. 금세 동이 나고 조리원은 텃밭에 뛰어가서 상추를 더 뜯어왔는데 그 상추마저 다 먹었다. 우리가 밤부롯지의 상추
다 뜯어먹고 가는 것 같다.
07:00분 기념촬영 후 출발.
한 시간 동안을 계속 내려간다. 한 시간 동안 내려간 높이를 올라가려면 그 두 배나 세 배의 시간과 힘이 들겠지만 랑탕콜라 곁으로 난 숲길을 걷는 게 더
할 수 없이 좋다. 엊저녁에 내린 비로 숲길은 촉촉하고 싱그럽다. 포항에서 온 동기는 그런 길을 빨리 가는 게 안타깝다면서 연신 가이드에게 카메라를 주고
사진을 부탁하기도 한다.
히말라야 석청
07:50분 말로만 듣던 석청이 암벽에 주렁주렁 매달린 곳에서 모두들 한참 동안 구경하며 촬영을 했다. 그 아래에는 원숭이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도 한다.
히말라야가 아니면 어디서 이런 귀한 풍경을 볼 수 있으랴.
계곡 아래까지 내려가다가 파이로(pairo)라는 곳에서 잠시 쉬었다. 파이로에서는 오늘 우리가 올라가 점심을 먹을 곳인 툴로샤브루가 보인다.
우리는 거기서 더 걸어 계곡의 바닥까지 갔다가 다시 오르막길로 올라갔는데 삼거리에서 이 상무의 GPS로는 1,758미터가 나왔으니 우리가 내려갔던 계곡
바닥은 넉넉잡아 1,740미터쯤 되겠다. 그렇다면 오늘 도착할 곳인 촐랑파티가 해발고도가 3,584미터이니 하루에 수직고도 1,884미터를 올라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애초에 계산하기는 단순히 밤부 1,870미터 촐랑파티 3,584미터여서 1,600미터만 오르면(그것도 엄청나지만) 될 줄 알았는데 그보다 280미터를
더 올라가야 한다. 지금까지 세 번의 히말라야 트레킹 중에서 하루에 오르는 가장 높은 고도다. 지금까지도 또 앞으로도 내 생애에 두 번 다시 없을 일이다.
독초 시스누(sisnu)
길가에 있는 잡초에 우연히 장갑 낀 손이 스쳤는데 그게 독초여서 쓰라림이 크다. 그 독초가 어쩌다 발견되는 것도 아니고 길가에 그리고 밭둑 등에 무성하게
자라고 있으니 거기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을까 싶다. 나 말고 우리 동기 몇몇도 그 독초에 쏘였다고 한다.
** 독초 이름이 '시스누(sisnu)라고 인디카의 김만수 씨가 알려줬다.
10:40분 툴로샤브루에 도착하자마자 주스 한 잔.
아침 7시부터 3시간 40분 동안 걸었으나 랑탕계곡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느라고 밤부 깃점 불과 240미터밖에 오르지 못했고 여기서 중식 후
1,400미터를 더 올라가야 한다. 등산화와 양말까지 벗고 발에 햇볕을 쬐며 쉬게 했다.
내가 언제 다시 땀 흘리며 이런 길을 걸을 수 있을까. 내가 언제 다시 히말라야의 설산들을 마주 할 수 있을까.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 준 내 늙은 두 다리가
고맙다. 점심으로 짜장밥이 나왔는데 아주 맛이 있다. 내가 사는 동네의 만리장성 짜장밥보다 맛있어서 실컷 먹었다. 동기가 준 약 덕분에 이제 혓바늘과
입안의 헤진 곳도 거의 다 나아서 뭘 먹기가 수월하다. 살만하다.
11:50분 툴로샤브루를 출발해서 조금 올라가니 학교가 있다. 학생들도 많고 모두 교복도 입었다. 아이들이 휴식시간이라 그런지 밖에 나와 있는데 활기가
있다. 누군가 어제 랑탕의 학교에 준 학용품을 이 학교에 갖다 줄 걸 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가는데 길가에 엄청나게 큰 고사리가 있다. 굵기가 보통 고사리의 네 배나 될 것 같다. 이건 영양분이 풍부해서 그런 게 아니라 종자가
다른 것 같다. 아무래도 내가 사진 찍으며 이렇게 트레킹만 할 게 아니라 네팔에 와서 고사리를 기르거나 채취해서 한국에 팔아먹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대박을 터트릴 것 같은데.
14시 경부터 하늘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비만 안 온다면 오늘 같이 힘든 날은 흐린 게 훨씬 좋다. 계속 올라가 해발 2,950미터에 이르니 너른 들판이 나타났다.
너른 들판이라고 해서 우리의 호남평야 같은 게 아니라 첩첩산중에 농사를 짓는 밭이 좀 있는 것이다. 거기에 농가 같은 롯지가 있는데 현수막처럼 된
간판에 ‘LALIGURANS HOTEL &LODGE’라고 되어있다. 우리가 랄리구라스라고 하는 꽃의 정확한 이름은 ‘LALIGURANS 랄리구란스’라고 되어 있다는 걸
인디카의 김만수 씨의 랑탕 트레킹 기록 중 네팔 고다바리 식물원에 있는 ‘명찰’에서 확인했는데 이 롯지가 바로 그 LALIGURANS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이 글은 나와 내 주의의 사람들이 읽고 이해해야 하므로 랄리구란스가 아닌 랄리구라스로 표기하기로 한다.
어미닭과 행복한 병아리
롯지의 벤치에서 잠시 쉬는데 병아리 몇 마리를 품은 암탉이 카메라를 든 나를 빤히 보면서 경계를 한다. 노란 병아리들은 연신 엄마의 날개죽지 아래를
들락거린다. 이런 암탉과 병아리를 본 게 얼마만인가. 초등학교 다닐 때 이후 처음 본다. 양계장의 부화기에서 나온 요즘의 병아리들은 에미도 모르는데
엄마 품에서 자라는 이 병아리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무슨 일이 생기면 그저 ‘엄마!’하고 부르면 엄마가 와서 다 해준다. 해발 3,000미터의 히말라야 산중에서
만난 어미닭과 병아리가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조금 더 올라가 해발 3,000미터를 지나자 온 산이 말 그대로 꽃밭이다. 꽃의 숲이다. 여기 저기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게 아니라 가깝고 먼 산의 중턱 전체가
화사하게 핀 랄리구라스로 덮였다. 야생화 몇 포기 보고 꽃멀미를 한다는 사람이 여기에 오면 꽃에 취해 죽을까 염려된다. 날씨가 흐려 산뜻한 사진을
얻을 순 없지만 그거야 아무래도 괜찮다. 눈으로 실컷 보고 마음속에 담아가면 된다.
내 나이 이제 만 66살이 넘었다. 앞으로 언제 어떤 일로 하루에 고도를 1,900미터나 올리는 산행을 할 것이며 어떤 일로 이렇게 황홀한 느낌으로 셔터를 누를
것인가. 이 꿈결 같이 황홀한 꽃길-.
언제 다시 이 길을 걸을 것인가.
고지대여서 그런지 뒤에서 살짝 부는 바람도 차갑다.
촐랑파티
얼마나 올랐을까. 앞서간 동기들은 꽁지도 보이지 않고 박형과 사진 찍으며 체력이 다한 나만 말 그대로 사력을 다 해 걷는다. 마지막 피치에서 박형이 너무나
힘들어하면서 나 보고 먼저 올라가라고 한다. 자기는 좀 쉰 후 따라 가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래서는 절대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내
가 앞에서 걸으며 천천히 구령을 붙일 테니 구령에 맞춰 발을 옮기라고 했다.
“하나...둘...셋...넷...하나...둘...셋...넷...”
그렇게 힘들어하던 박형도 내가 구령을 붙이니 발을 옮기며 따라왔다. 그렇게 30분이나 걸었을까 촐랑파티 롯지가 보인다.
17:00 마침내 해발 3,584미터 촐랑파티에 도착했다. 아침에 07시에 출발했으니 점심시간을 포함 열두 시간이 걸렸다. 롯지에 들어가니 먼저 도착한 동기들이
박수를 보내준다. 이렇게 박수 받는 재미로 나는 늘 꼴찌로 온다.
우선 카고백을 열어 오리털파카를 꺼내 입었다. 몹시 춥다.
저녁을 먹고 나니 전기도 없고 양치질할 물조차 없는 촐랑파티에선 그저 잠이나 자야 한다. 삼각대를 가지고 별촬영에 나섰으나 몇 컷 찍다가 그만 두었다.
춥고 피곤해서.
새벽별이 바글바글하다.
촐랑파티까지 가장 높은 고도차이를 처험하는 날이다.
오늘의 일정 때문에 난 출발하기도 전에 주눅이 들었다.
여기도 사람이 살고 공부하는 아이들이 있다.
행복한 병아리와 어미 닭
랄리구라스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촐랑파티의 숙소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