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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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일차-10월 4일/카트만두-포카라-나야풀-비레탄티-힐레
Kathmandu-Pokhara-Nayapul-Birethanti-Hile
포카라(Pokhara)와 폐와(Phewa) 호수
5시에 모닝콜이 왔다. 쾌청한 날씨.
뷔페로 아침식사를 하고는 호텔 여기저기를 돌며 카메라에 담았다. 우리나라는 가을인데 여긴 아직 여름 같이 초목이 싱그럽다.
식사 후 버스를 타고 트리부반의 국내선 비행장에 가는데 곳곳에 자동소총을 든 군인들이 깔리다시피 했다. 뭔 일이 생겼나보다. 얼마 전인 9월 25일엔
부다항공의 비행기 사고로 탑승원 19명이 몰사하는 사고도 있었고 같은 무렵 트리부반 공항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제보로 6시간 동안 공항이 마비되었다고도
하는데 제발 사람 간 떨어지는 일은 좀 없었으면 좋겠다.
07:50분, 예티항공(Yeti Airlines)의 포카라(Pokhara)행 새끼 비행기에 탔다. 그래도 루클라에 가는 17인승 보다는 조금 더 크다. 17인승엔 객실과 기장실
사이에 문도 없는데 이 비행기엔 문도 있고 실내도 좀 더 깨끗하다. 이륙해서 포카라에 가는 동안 히말라야의 하얀 설산들이 창을 통해 나타나 계속 셔터를
눌렀으나 창이 깨끗하지 않아 선명한 사진을 기대할 수는 없다.
30분도 안 되어 비행기는 네팔 제2의 도시 포카라에 도착했다. 카트만두만 해도 해발 1,320미터가 넘는데 포카라는 그보다 500미터나 낮은 해발 820미터밖에
안 된다. 그러니 더 덥고 끈적거린다. 하늘엔 옅은 구름. 여기서 우린 성수 스님과 헤어졌다. 스님은 따로 여행할 일이 있다 하셨다.
모두들 페와(Phewa) 호숫가로 가서 서너 명씩 보트를 타고는 호수 안에 있는 작은 섬으로 노 저어 갔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오오~’.
네팔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페와 호수는 크고 아름다웠다. 물빛도 아름답고 호수를 둘러 싼 풍경들도 아름답다. 가까운 산도 비치고 먼 산도 비쳤다.
네팔에 오기 전에 바라기는 이 페와 호수에 비친 마차푸차레를 비롯한 히말라야의 설산들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으나 구름과 연무로 안나푸르나만 잠깐 보일 뿐
‘물고기 꼬리’인 마차푸차레는 끝내 보이지 않는다. 내 욕심이 너무 컸나 보다. 아니면 앞으로 호수에 비친 모습보다 더 근사한 모습을 보여 주려는지도 모르겠다.
우린 호수 가운데 보석처럼 떠 있는 섬에 내려 바라히(Barahi) 사원 등 섬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처음 사원 이름을 몰라 거기에 근무 중인 경찰에게 메모수첩을
내밀고 사원의 이름을 물으니 ‘Barahi Mandir(Temple)'라고 친절하게 써주었다. 사원에선 무슨 의식을 치르는지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내겐 그런 의식이 이해되지 않지만 신자들에겐 그런 것이 삶의 한 부분이고 아침에 밥을 먹듯이 중요하고도 자연스런 일일 것이다.
페와 호수를 둘러 본 후 선착장을 나오는데 다른 배에 탄 아름다운 여인을 촬영하느라 한눈을 팔았나 보다. 선수 쪽을 보니 함께 배에 탔던 동기들은 이미 배에서
내려 버스를 타러 가고 있고 배엔 나 혼자 있다. 이래서 미인은 항상 사고뭉치라는 건가 보다. ~^^*
나야풀(Nayapul)로 달리다
버스를 타고 포카라를 떠나 나야풀로 달린다. 도로 여기저기에 양을 끌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이 직접 끌고 가기도 하고 오토바이에 싣고 가기도 한다.
네팔은 어제부터 일주일간 추석명절이라고 하며 이때는 양을 잡아먹는 풍습이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집집마다 양을 잡는 통에 양의 수가 모자라 티베트에서
수입하기도 한다고 한다. 나야풀을 벗어난 버스는 마차푸차레에서 흘러내려오는 강과 너른 들판을 곁에 두고 잘도 달린다. 벼는 익어 황금빛이다.
들판이 끝나고 곧 첩첩산중으로 들어가더니 꼬부랑 도로를 계속 올라간다. 보수를 하지 않아 도로가 너덜너덜하지만 꼬마선풍기와 에어컨까지 달린 버스는
잘도 달린다. 한참을 올라가더니 이젠 내리막길이다. 내려다보니 S길이 겹치고 겹쳐 몇 개의 길이 한눈에 들어올 때도 있다. 주변의 풍경은 한창 때의 녹음처럼
짙푸르다.
그런데 네팔에서는 가급적 차의 앞에 타는 걸 삼가는 게 좋을 것 같다. 특히 심장이 약한 사람은 그러는 게 좋다. 좁고 급커브가 이어지는 도로에서도 앞에 가는
다른 차가 보이면 에누리 없이 경적을 울려댄다. 이 좁은 도로에서 경적을 울려대면 앞차는 어디로 피해가라는 말인가 싶은데 그런 걱정은 하나마나고 안 해도
된다.
도저히 추월해 갈 수 없을 것 같은 도로인데도 버스는 조금의 감속도 없이 쌩~하고 앞차를 스쳐 지나간다. 울퉁불퉁 너덜너덜한 좁은 도로에서 말이다.
그 상황이 마치 묘기대행진을 보는 듯 아슬아슬하다. 오늘 버스기사가 마누라하고 대판 싸우고 나왔나 그래서 이판사판식인가 싶을 정도여서 보는 내내 마음을
졸였다.
트레킹의 시작
12:10분 마침내 트레킹이 시작되는 나야풀에 도착했다. 나야풀은 푼힐(Poon Hill)이나 안나푸르나에 가는 사람들의 출발점이다. 그래서 오고가는 차량들로
무척 붐비는 곳인데도 도로가 좁아 차마다 울리는 경적소리가 요란하다. 보노라면 정신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다.
나야풀은 포카라보다 고도가 200미터 이상 높은데 무척 덥다. 버스에 싣고 온 카고백에서 트레킹에 필요한 스틱 물통 등을 꺼내고는 비레탄티(Biretanti)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카메라를 넣은 인버스 벨트팩을 앞으로 차고 뒤에 멘 35리터 배낭엔 교환렌즈와 옷가지 등을 넣고 스틱을 짚으며 걸었다.
트레킹이 끝날 때까지 앞으로 계속 이렇게 걸어야 하기 때문에 벨트팩과 배낭의 끈도 미리 적절하게 조절해 놓고 괜찮은지 아침산책 때 실험도 했었다. 잘못
조절한 벨트팩이나 배낭끈은 의외로 걷는 걸 힘들게 하기 때문에 더 이상 조절한 일이 없는 끈은 아예 바느질로 고정시켜 놓기도 했다.
왼쪽으로 흐르는 강물을 보며 비포장도로를 따라 작은 마을도 몇 개 지나다보니 비레탄티가 나타났다. 12:50분.
비레탄티에서 부릉디콜라를 따라 오르다
비레탄디는 안나푸르나 남벽에서 발원한 우측의 모디콜라(Modi Khola)와 고라파니(Gorapani)에서 발원한 좌측의 부룽디콜라(Burungdi Khola)가 합쳐지는
곳이다. 쿰부에선 이런 강(江)을 코시(예-두드코시, Dudh Koshi)라고 하던데 여기선 콜라(Khola)라고 하나보다. 어떻게 다르냐고 가이드에게 물어본다는 게
그만 어버렸다.
좌우간, 이렇게 합쳐진 강물은 인도의 갠지스강으로 흘러들어 벵골만으로 나간다.
비레탄티에서부터 우리와 동행하는 조리팀이 만든 음식을 먹게 되었다. 도착하자마자 우선 레몬티가 나와서 단숨에 마시고 쉬고 있으니 점심으로 비빔밥이
나왔다. 무늬만 비빔밥이 아니라 오리지널 순한국식 비빔밥이다. 거의 대부분의 식재료도 한국에서 직접 가져온 것이다. 재료가 문제랴. 우리 쌀로 지은
밥이라면 그냥 고추장에 비벼 먹어도 짱이다. 꿀맛이다.
13:45분, 비레탄티를 출발해 좌측의 부릉디콜라를 곁에 두고 오르기 시작했다. 맑은 물이 엄청난 양으로 흐르고 물소리 또한 청량해서 경쾌한 음악을 듣는
기분이다.
좁고 깊은 계곡이라 점심때가 조금 지났을 뿐인데도 이미 그늘이다. 계곡물엔 하루에 얼마나 햇살이 비칠까 싶다. 오르는 도중 몇 군데는 산사태로 밀려 내려온
토사가 길을 덮어 그 위로 사람들이 다녔고 우린 그 흔적을 따라 통과했다.
우기의 끝이라 그런지 여기저기에 물이 흔하게 흘러 도랑물도 건너고 징검다리도 건넜다. 부릉디콜라 가까운 작은 논엔 아직 패지 않은 벼가 파랗게 자라고
있다. 참 이상한 건 이렇게 패지도 않은 벼가 있기도 하고 다 익어 노랗게 고개 숙인 벼도 있고 심지어는 지금 막 이삭이 나온 보리도 있다. 벼는 시월에 익고
보리는 5월에 패는데 여긴 계절에 대한 ‘질서’가 없는지 뭔가 좀 뒤죽박죽이라는 느낌이 든다.
관존민비(官尊民卑)와 인과응보(因果應報)
무더위 속에 ‘산을 넘고(산길을 가다가 권정회 씨가 왼쪽 눈 아래를 벌에 쏘였다) 강을 건너’며(작은 도랑물에 빠지는 분도 있었다 ~^^*) 자꾸자꾸 올라갔다.
벌에 쏘인 숙녀는 얼굴이 부어오르고 아파 죽겠다는데도 별별 우스개가 다 나왔다. 벌침을 맞으면 예뻐진다는데 지금보다 더 예뻐져도 괜찮겠느냐는 말에서부터
벌침에 쏘이면 불치병도 낫는 수가 있다는데 왜 일반사람들은 안 쏘고 공무원만 쏘느냐 이건 지금도 관존민비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니냐 등등 온갖 이야기가
다 나온다.
그러나 그런 유언비어는 당사자의 해명으로 간단히 끝났다. 경찰학교에 근무하는 권정회 씨는 지난 여름 교내에 집을 짓고 학생들을 위협하는 벌들 때문에 많은
벌집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었는데 그 감정으로 쏜 것 같다는 말이었다. 한국의 벌들이 네팔의 벌에게 문자를 보내 우리를 못살게 한 숙녀에게 웬수를 갚으라고
했다는 거다. 한국이 IT강국이라고 하더니 벌들까지 문자를 보낼 줄 아는구나. 거참.
한참을 가다보니 부릉디콜라의 지류인지 깊은 계곡물에서 얕은 강이 지상으로 나왔다. 맑은 물이 흐르는 강가엔 붉은색 부겐빌리아가 흐드러지게 피었고 강보다
높은 곳으로는 다랑논이 산 정상 가까이까지 이어졌다. 여기서도 이렇게 농사를 지으며 사람이 사는구나 싶다.
힐레(Hile)에서
16:20 첫날밤을 지내야하는 힐레(해발1,430미터)에 도착했다. 맘타(Mamta)라는 이름의 길가 이층 롯지에 짐을 풀었다. 어느 새 하늘은 흐려 구름에 덮였다.
우선 카메라와 포토스토리지인 넥스토의 배터리를 AC로 충전했다. AC가 있는 한 준비해온 배터리 충전기를 아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낮에 땀에 젖었던
티셔츠와 스카프를 빨아 널었다.
저녁식사는 삶은 돼지고기와 상추 치커리 된장국 등이 나와서 맛있게 많이 먹었다. 이제 우리 조리팀이 있으니 먹는 문제는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식사 후 밖에 나가보니 일찍 뜬 상현달이 구름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 막내 준이는 3일 전인 10월 1일부터 ‘전투’에 들어갔는데 애써 개발한 소프트웨어가
이상 없이 잘 돌아가고 있는지 몹시 궁금하다. 살려고 몸부림치는 녀석의 모습이 안쓰럽다. 앞으로 두 달, 11월 말까지 녀석이 전투에서 승리하기를 빌었다.
오늘 후텁지근한 날씨에도 잘 걸었다. 아직도 간간히 식은땀을 흘리곤 하지만 더 심해지지 않으면 몸을 걱정하지 않는다. 오른쪽 어깨가 결려 아직도 목이 잘 안
돌아가지만 이것도 트레킹하고 사진 찍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
걷는 데 문제 없고 카메라를 들고 사진 찍는 데 문제 없다면 내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카트만두의 상그릴라 호텔에 지난 4월에 이어 두 번째로 들었다.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포카라에 갔다.
폐와 호수에서 배를 타고 호수 가운데에 있는 바라히 사원에도 들렀다.
나야플에 도착해서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소녀야
소녀야
야크똥을 지고 힘겹게 걸어가는 가는 소녀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름다운 계곡을 곁에 두고 계속 걸었다.
평화로운 시골 풍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