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김이식의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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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는 23년 전인 20029월 제 홈페이지에 "김이식 포토갤러리를 열면서 소개했던 글입니다.

 


"OFFICIAL ROK ARMY PHOTOGRAPHER"
이것이 故 金二植의 군복 상의에 새겨진 군대에서의 그의 직책이다

지난 몇 달 동안 그가 남긴 필름들을 하나하나 스캐닝 하면서 사진 속의 그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사진 곳곳에 나타나는 왜소하고 

새까맣고 미국인들에게 억지웃음을 보이는 당시의 힘없는 한국인이 아니라 그들에게 조금도 꿀리지 않는 당당하고 훤칠한 키의 멋진 한국군 

육군장교였다. 난 그것만으로도 그가 좋다.

 

그가 남긴 흑백 네가티브를 스캐닝 하는 작업을 하면 할수록 그에 대한 호감은 더해 갔다. 이 작업을 하는 동안 못살고 힘없는 당시의 

우리가 처한 상황에 가슴이 아리기도 했으나 그는 사진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기분 좋은 사람이었다.

20024월 초순, 같은 직장의 지인을 통해 김이식의 아들인 삼림상사의 김충백 사장을 서울 그의 집무실에서 소개받았다.  

그리고 거기에서 난 김이식이 촬영한 흑백 네가티브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것은 감동 그 자체였다

50여 년 전 한 사진가가 촬영한 네가티브를 이렇게 대면한 건 처음이었다. 많은 네가티브가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고 또 훼손이 

진행 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네가티브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사진들은 그만큼 가치 있는 것이었다.


그의 사진은 대부분 Speed Graphic에 의한 4*5인치 필름으로 촬영되었고 일부는 120필름과 35미리 필름도 있었다. 또 필름은 그의 

아들인 김충백 사장에 의해 필름용 파일과 바인더북에 정리된 것도 있었고 정리되지 않은 채 상자 속에 담겨 있는 것도 있었으며

120이나 35미리 필름은 돌돌 말린 채로 종이에 싸여있는 것도 있었다

사진 내용은 50년대에서 60년대까지 그가 있던 군대를 비롯해서 보육원, 전국 각지의 사찰, 자연, 시장과 항구, 가족 등등의 사진이었다.


난 즉시 김이식이 남긴 네가티브를 스캐닝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 작업은 하루라도 빨리 진행시켜야 할 이유가 있었다. 오랜 시간 

보존환경이 좋지 않았던 일부의 필름들은 주변부가 이미 심하게 훼손되기 시작했고 거미줄처럼 퍼지기 시작한 곰팡이는 필름의 화상에 

심각한 영향을 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작업을 하면서, 그가 그의 사진에 대한 애정이 어떠했는지를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열악했을 그 당시 더군다나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그가 어떤 식으로 당시의 상황을 필름에 담으려고 애썼는지를 확연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작업을 하면서 내내 이런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만일 지금과 같은 해상도의 스캐너가 없었다면, 그리고 지금과 같은 속도와 용량의 컴퓨터가 없었다면, 그리고 지금과 같은 기능의 

이미지 처리용 소프트웨어가 없었다면 김이식이 남긴 이 많은 필름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35미리 필름 중엔 필름 표면에 코팅도 되지 않고 필름 메이커의 표시는커녕 각 프레임의 번호조차 없는 실로 한심한 것도 있었다

플라스틱 조각에 은화합물을 입혔을 뿐인 이런 필름에 영상이 기록되고 또 이런 필름에서 디지털이미지를 뽑아낸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라면상자 세 개에 들어있는 수많은 필름 중에서 선별한 1,700여 점의 사진을 스캐닝하고 하나하나 수정하는 작업은 2002년의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의 문턱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런 작업을 통해 완성된 이미지를 손쉬운 관리와 검색을 위해 필름철대로

이미지 장르별로, 그리고 프린트를 위해 편집한 대로 50여 개의 CD에 담았다. 또한 지금도 생존해 있는 연로한 그의 미망인을 위해 별도로 

일곱 권의 프린트한 앨범도 만들었다.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모든 작업이 끝났다.
그러나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좀 더 찬찬히 그의 작품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그가 사진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듣고 싶다

그리고 나의 이 미천한 눈과 둔한 손으로 격동기의 한 시대를 살다 간 사진가 김이식의 사진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디지털화했는지 두렵기도 하다.


그에게 진심어린 존경을 보내며

20029

제주시 용담동에서  김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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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남북한의 사찰을 촬영한 사진들인데 여러 불교 단체나 개인이 요청해서 보내주기도 했다.

사진을 보면 알다시피 드론도 없던 시절 작가는 사찰 전체를 담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상상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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